제9장
타오화이난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 가려고 바로 몸을 돌리는 순간 하마터면 티엔이의 찻상에 부딪힐 뻔했다. 티엔이가 얼른 그의 허리를 낚아채 다시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팔도 주물러보고 배도 만져보며 커다란 인형이라도 되는 양 귀여워했다.
형의 친구들이든 주변 어른들이든 타오화이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너무나도 착해서 누구네 집에 가든 보채거나 떼쓰지 않았고, 손에 작은 물건 하나만 쥐여주면 조용히 만지작거리며 어른들에게 절대 번거로움을 주지 않았다.
하얗고 말랑한 데다 우유 냄새까지 풍기니, 어른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예쁜 아이였다.
운명이란 참 불공평했다. 이렇게 착한 아이가 검고 맑은 큰 눈동자를 또로록 굴리는데 정작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밖에 서 있던 츠쿠는 듣지 못했고, 울보 타오화이난이 형들에게 자기들 사이가 좋다고 말한 것도 알 리 없었다. 이 두 아이들은 주말 내내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원래는 일요일 저녁에 학교로 보내야 했지만 타오화이난이 시무룩해하며 가기 싫어하자, 타오샤오동은 마음이 약해져 내일 아침에 보내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담임 선생님도 이 둘에게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둘 다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밤에 잘 때 타오화이난은 형의 팔 하나를 꽉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았다. 골든 리트리버는 타오화이난의 침대 옆에 웅크리고 누워 이따금 고개를 들이밀며 냄새를 킁킁 맡았다. 타오샤오동은 팔을 붙잡힌 채 할일 없이 손으로 동생의 몸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확실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만, 곁에서 웅얼거리며 조금씩 자라나는 꼬맹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하고 든든해져서 밖에서 아무리 치열하게 돈을 벌어도 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츠쿠가 방에서 나오더니 화장실로 향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벌써 세 번째였다. 타오샤오동은 그가 다시 나오는 소리를 듣고 밖을 살폈다.
츠쿠가 화장실에서 나오다 마침 방 문 앞까지 걸어 나온 타오샤오동과 딱 마주쳤다.
"무슨 일이니?" 타오샤오동이 물었다.
츠쿠가 먼저 말을 하지 않자, 타오샤오동이 다시 물었다. "배 아파?"
"아니요." 츠쿠는 그제야 입을 열었고 한참을 멈칫거리다 불편한 듯 "베개가 더러워졌어요"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더러워지면 좀 어때." 타오샤오동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더러워졌다고 왜 그렇게 들락날락해?"
타오샤오동은 말하면서 그의 방으로 가 손을 뻗어 불을 켰고 츠쿠는 그 뒤를 따라오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타오샤오동은 베개 커버가 벗겨진 채 속통만 남은 베개를 보고는 못 말린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네가 직접 빨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츠쿠가 대꾸하지 않자 타오샤오동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어쩌다 더러워졌어?"
츠쿠는 타오샤오동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코피가 났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말을 했어야지?" 타오샤오동이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코 밑에는 이미 피가 멎어 있었다. "어쩌다 그랬어?"
"모르겠어요."
츠쿠의 코는 그의 아버지에게 맞아 다친 적이 있어 콧등을 다친 상태였다. 타오샤오동이 몇 마디 더 물었지만 어린아이의 코피는 그리 큰일이 아니었고, 그 역시 어릴 때 모세혈관이 약해 코피를 자주 흘리곤 했었다. 츠쿠 같은 경우는 그저 천천히 요양하며 평소 부딪히거나 자극을 받지 않게 주의하는 수밖에 없었고, 아직 나이가 어리니 점차 나아질 것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늘 콧물을 달고 살더니 이제는 그것도 없어졌다.
“어린녀석이 빨래는 무슨.” 타오샤오동은 그의 이마에 딱 밤 한 대를 때렸다. 츠쿠가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음에도 이렇게까지 잔뜩 긴장해 있는 모습을 보니 여전히 이 아이가 너무 움츠러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순간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어졌다. 타오샤오동은 꽤나 밝은 성격이라 누구와도 대화가 잘 나누는 편이었지만 그것도 어른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츠쿠처럼 성격이 꼬인 아이 앞에서는 타오샤오동도 정말 대책이 없었다.
결국 타오샤오동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거라” 하고 말한 뒤 불을 끄고 방을 나갔다.
하룻밤이 지나고 마주해야 할 것은 결국 마주해야 했다. 가기 싫어도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다행히 한 번 가봤다고 익숙해졌는지 이번에 타오화이난은 처음 왔을 때만큼 형과 떨어지기 힘들어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저 형이 가기 전까지 “금요일에 꼭 데리러 와야 해”라는 말을 멈추지 않고 반복할 뿐이었다.
타오샤오동은 그의 턱을 가볍게 쥐어 흔들며 “잊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타오화이난이 또 말했다. “스예예도.”
“기억하고 있어, 나 매일 출근할 때마다 데리고 다녀.” 타오샤오동은 턱을 쥔 채 그의 볼을 꼬집었다.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꼬집으며 말했다. “어디 안 보냈으니까 넌 걱정하지 마”
타오샤오동은 그를 자리까지 데려다주었다. 입학 초기라 이렇게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지만, 몇 주만 지나면 교문 앞까지만 배웅할 수 있었다. 형이 떠난 뒤 타오화이난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뒤를 돌아 뒤쪽 책상의 오른쪽 상단 표식을 더듬어 보았다. 그것은 츠쿠를 나타내는 번호 였다.
더듬거린 뒤에는 손을 더 뒤로 뻗어 츠쿠 책상 위의 필통까지 만져보았다.
츠쿠는 그가 입술을 꾹 다문 채 책상 위를 이리저리 더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타오화이난이 손을 조금 더 뻗어보려 할 때 선생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바르게 앉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타오화이난은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있다가 몸을 돌렸다. 돌아앉은 뒤에도 한참 동안이나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정자세로 앉아 있어 보기에도 몹시 긴장한 모습이었다. 점자 수업이 끝날 때까지 타오화이난은 다시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틀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에 말을 붙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아침에 선생님께 이름을 불린 탓에 타오화이난은 오전 내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쉬는 시간마다 뒤를 돌아 더듬어 보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츠쿠의 팔을 만지게 되었고 그제서야 손을 거두고는 안심하며 의자에 몸을 붙였다. 더 이상 뒤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줄을 서서 밥을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이쯤 되니 아무리 말을 꺼내기 어려워도 타오화이난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낮은 목소리로 뒤를 돌아 “츠쿠” 하고 불렀다.
사실 츠쿠는 이미 그의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타오화이난은 대답이 들리지 않자 다시 한번 불렀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한 번, 두 번 부르고 만약 세 번째 불렀을 때도 대답이 없으면 타오화이난은 분명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했고 혼자서는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츠...” 타오화이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막 입을 떼려 할 때 츠쿠가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고 한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타오화이난은 다른 한 손으로 상대를 더듬어 소매 위의 숫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편안해졌고,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츠쿠가 그를 데리고 문 앞으로 가서 줄을 서자 타오화이난은 웃으며 “네가 나 안 기다려주고 그냥 간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츠쿠가 그를 데리고 줄을 서자 타오화이난은 그의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며, 몸을 앞으로 바짝 붙이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너 안 갔구나?”
애교 섞인 물음에도 츠쿠는 뒤돌아보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사람을 손에 넣었으니 그가 말을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타오화이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꼬마 기차를 따라 줄을 서서 밥을 먹으러 갔고 아주 얌전하게 행동했다.
어린 시각 장애 아이들은 모두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지난주 처음 왔을 때보다 다들 몰라보게 발전해 있었다. 식당에는 1학년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무척 많았다. 1학년 꼬맹이들은 한쪽 구석에 테이블마다 자리를 잡고 앉았고, 거의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스스로 더듬거리며 밥을 먹었 있었다.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해 먹여줘야 하는 아이는 겨우 몇몇뿐이었다.
타오화이난은 아주 천천히 먹었고 츠쿠는 이미 다 먹고 옆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타오화이난은 아침에 집에서 밥을 먹고 온 터라 큰 컵의 우유를 마시고 나니 사실 점심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그저 소변을 참느라 견디기 힘들었는데, 오전 내내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서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밥 반 공기를 겨우 먹은 타오화이난이 츠쿠의 귀에 대고 “츠쿠, 우리 갈까? 나 배가 너무 답답해...”라고 속삭였다.
보통은 같은 방 아이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함께 돌아가야 했는데, 다른 두 명은 아직 밥을 반도 넘게 남겨두고 있었다.
츠쿠가 고개를 돌리더니 의자에서 내려왔고, 타오화이난도 그를 붙잡고 따라 내려왔다. 할머니가 다 먹었느냐고 물으셨지만 타오화이난은 여전히 말을 꺼내기가 겁이 나 츠쿠의 옷자락을 쥔 채 그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한 명은 말을 안 하고 한 명은 감히 말을 꺼내지도 못 하니, 두 형제는 정말 할머니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둘 다 말을 안 하니 여기서 모두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그러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했다.
나중에 츠쿠가 먼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가끔 그가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여전히 시각 장애 아동으로 대하며 물으셨다. "그럼 할머니가 데려다줄까?"
츠쿠가 고개를 젓자 할머니는 그가 볼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두 아이를 보내주었다.
타오화이난은 츠쿠의 손에 이끌려 돌아가는 길에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츠쿠의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리고 입가에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진짜 너무 착하다."
츠쿠는 그런 말엔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식의 호의는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타오화이난은 주말 내도록 집에서 서로 아는 척도 안 하던 상태를 금세 잊어버렸다. 형이 없을 때 츠쿠는 그에게 가장 좋은, 제일가는 존재였다.
이 두 아이는 참으로 흥미로웠는데, 이렇게 손을 맞잡고 떨어지지 않는 모습은 오직 학교 안에서만 머물 뿐 주말에 교문을 나서는 순간 돌변하여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츠쿠도 무엇을 하든 타오화이난이 손을 잡기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타오화이난도 시도 때도 없이 "츠쿠"라며 부르지 않았다. 서로 투명 인간 취급하는 것은 월요일까지 이어지다가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다 듣고 나서야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곤 했다.
타오샤오동은 매번 전화로 선생님께 두 형제가 한 몸처럼 사이가 좋다는 말을 들었으나 정작 자신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들은 것과 그가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달랐다.
어느덧 여름이 되었고 타오화이난과 츠쿠가 학교에 다닌 지도 두 달이 넘었다.
점자도 꽤 많이 알게 되었고 시도 몇 수나 외울 수 있게 되었다. 타오화이난은 이제 제법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었고 츠쿠는 말할 것도 없어서 선생님은 타오샤오동에게 그가 너무 똑똑하다고 몇 번이나 칭찬했다.
타오샤오동은 처음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제는 그저 재미있다고 느꼈다. 아이라는 생물은 정말이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금요일 오후에 별다른 일이 없었던 타오샤오동은 일찌감치 학교에 가서 모니터실에서 교실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타오화이난은 교실에 앉아 있다가 덥게 느껴졌는지 츠쿠를 부르며 덥다고 했고, 츠쿠는 커다란 시험지를 접어 던져주며 직접 부채질을 하라고 했다. 모니터로는 동작만 보일 뿐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타오화이난은 천천히 부채질을 하며 츠쿠에게 저녁에 같이 빙수를 먹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저녁이 되자 각자 빙수 한 그릇씩을 들고서 같이 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타오화이난은 식탁에 앉아 발밑에 스예예의 등을 받치고 있었고, 츠쿠는 발코니 창문을 열어둔 채 그곳에서 먹었다.
두 아이의 태도가 계속 오락가락하니 타오샤오동은 이 플라스틱 친구(가짜 친구)들 때문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플라스틱 친구 : 겉으로만 친구인 사람... )
타오화이난은 숟가락을 문 채 그에게 왜 웃느냐고 물었고, 타오샤오동은 네가 웃겨서 그렇다고 대답했다.